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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마상

7월 첫 번째

01.

일기를 부지런히 챙겨 쓰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기억을 단어로 묶어 문장으로 완성시켜 나의 시간을 명료하게 기록한다는 것. 인내와 끈기, 성실함이 필요하다. 많이. 일기 써야지, 생각하곤 늘 미루다 많은 일상을 쉽게 흘려보내고 과거에 내버려두고 왔다. 기억하는 일보다 잊어버리는 일이 더 많다. 그게 무서워서 조금이라도 덜 게으를 때 이맘때의 일기를 써본다.

 

02.

바쁘다. 교사는 바쁘다. 바쁘고자 하면 한도 끝도 없이 바쁠 수가 있다. 그런 직업이다. 더군다나 고3을 맡게 되어 강제로라도 성실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한 해이다. 스물 하나의 아이들이 나에게 의지한다. 어리숙해도 생각은 있어서 의존은 아니지만. 그 /의지함/에 무척이나 책임과 의무를 느낀다. 게으른 담임이라 미안하다. 그래도 너희 일엔 덜 게으르거나 성실하게 굴고 있어. 나의 일상을 뒤로 하고서라도.

하지만 요즘은 생각한다. 자신의 일상과 자신의 공부함을 미루는 이가 정말로 괜찮은 담임인가? 본이 되는 교사인가? 좋은 어른일 수 있는가? 아니라는 결론의 요즘이다. 작은 운동이나마 꾸준히 하며 건강관리도 하고 밥이든 간식이든 잘 챙겨 먹으려 하고 와중에 공부도 책 읽기도 틈틈이 해내려 애쓴다. 그 조그만 노력들이 모여 나의 일상을 채우고, 그 성취감으로 인해 나는 건강해지며, 건강한 나이기에 우리 반 아이들의 일상을 건강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어느 것 하나 의미 없는 게 없고 뒤로 미룰 수 있는 게 없다. 고단하고 지겨울 때도 있지만, 생동할 수 있음에, 혹은 생동하고자 노력하고 시도하고 심지어 실패함에도 거기서 비롯되는 반성과 성찰로 인해 얼떨결의 살아있음을 획득한다. 아침에 제때 일어나기, 물 마시기 같은 간단해 보이는 일상의 일들은 간단하기에 해내지 못하면 더욱 큰 상실감이 몰려온다. 매일 해내는 사소한 일들을 모으면 나의 하루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일상을 살아가는(살아내는) 우리들은 이 시간 속에 머무르고 있음 그 자체로도 얼마나 근사한 존재들인가.

 

03.

가장 최근에 읽은 책. 조우리의 <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21세기 사상의 최전선>.

지난 주 내내 바빠서 사둔 책 읽기를 미루다가 오늘부터 다시 독서를 시작하여 지금 읽고 있는 책. 박선우의 <우리는 같은 곳에서>. 조우리와 동년배의 남작가이다. 나는 사실 박선우, 가 당연히(어째서?) 여자일 줄 알았다. 수록된 단편 2개까지 읽었다. 앞에서 조우리와 동년배, 라고 적은 이유가 있다. 조우리의 글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과 정확히 반대된다. 이 차이를 두 작가의 성별을 무시한 채 얘기할 수가 없는 지점들이 있었다. 발표한 시점이 오래 되었나? 확인해보니 대게 18~20년 사이에 쓰인 최근의 글들이다. 나는 더 혼란스러워졌다. 하고 싶은 바가 무엇인지 거의 모르겠고, 때문에 진행이 일관성 없으며 드문드문 보이는 수려한 표현의 문장들 때문에 더더욱 내용을 모르겠다. 두 편 모두 그랬다. 뒤의 작품들은 다르겠지? 불안 반, 희망 반 안고 읽기를 계속한다. 제대로 읽지 않으면 제대로 칭찬도, 비판도 할 수도 없으니까. 하지만 표제작인 <우리는 같은 곳에서>가 정말 별로였어서... 나머지에 대한 기대감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편견을 가지지 않으려 매 순간 노력하며 읽는 중이라 독서 시간이 좀 피로하다.

 

04.

넷플릭스 파티로 <올드 가드>를 봤다.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스토리, 그걸 깔끔하게 보여주는 감독의 대화 방식과 연출 방식이 좋았다. 나는 영화는 특히 잘 모르지만. 흔한 소재와 이야깃거리라고 해서 그것을 군더더기 없이 정리하여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깔끔하게 제시하는 일까지 흔하고 쉽지는 않다. 불멸하는 자들의 고뇌를 우리가 그동안 많이 봐왔던 /내 곁의 사랑하는 필멸자들을 잃는 슬픔/으로만 끝내지 않고 그들과 본인을 억지로 분리하면서 느끼게 되는 수만 가지의 상실감과 고립감, 그것을 해탈과 초연함으로 포장하여 침잠하는 슬픔으로 견뎌내는 캐릭터(아마도 앤디)와 그러지 못하여 필멸자들 만큼이나 생생한 감정적 괴로움에 허덕이는 캐릭터(특히 부커, 그리고 조와 니키조차), 그 모든 것을 정확하게 이해하려 결국 불안과 혼란마저 품어내는 캐릭터(나일) 등으로 세밀하게 다루는 것이 좋았고. 액션 장면이 괜한 눈속임 없이 솔직한 육탄전으로 끝까지 밀고 간다는 점도 좋았지만. 슬픈 일에는 마땅히 슬퍼하고. 슬프지 않은 것조차 그들에겐 슬플 수 있음을 알려주는 앤디의 모든 연기가 아름답고 너무너무 슬펐다. 보는 동안 눈물 훌쩍이는 장면도 꽤 많았음. 어째서일까요 이건 액션영화인데... 하지만 잘 만들어진 액션 영화는 액션만 남는 영화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겠죠.

음악 선곡도 너무 좋았어서 OST랑 삽입곡들 출근부터 지금까지 줄창 듣는 중이다. 아마 한동안 계속 들을 듯.

한 번 본 걸로는 정확한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세 번까지 보고 자세한 감상을 쓰고 싶다. 주말엔 샤를리즈 테론의 필모를 싹 훑어야지. 내가 본 건 아토믹 블론드와 매드맥스 뿐이구만. 우선 밤쉘부터 챙겨보고 싶다.

 

05.

기말고사 출제하기 싫다. 수행평가 채점하기 싫다. 하지만 해야 한다. 그래서 더 하기 싫어 흑흑모래모래자갈자갈...

 

끝.

20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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